2019. 9. 9. 22:02ㆍ칠곡 너구리 일상/2019 아일랜드 외 Ireland and others in 2019
아일랜드를 떠나기 전에는 피터와 주디 곁에 머물고 싶었다. 트렐리에 이언과 아일린을 만나는 기간 앞뒤로 오두막에서 지냈다. 나는 그들의 새로운 오두막을 사용하는 두 번째 손님이었다.
그들이 집에 가면 우선 차를 마시는 시간 tea time을 갖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사회 문제, 서로가 겪고 있는 문제, 고양이, 학교 생활, 이야기 소재는 끝도 없이 나온다. 그리고는 집 주변 농장 일을 했다. 장작을 패고 한 켠에 각 맞춰서 세워놓고, 브렘블 Bramble 덤불을 제거하고, 닭장 주변 울타리를 옮기기도 했다. 보통 오후 4~5시 까지 일을 하고 씻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주디와 피터가 만든 저녁을 대접 받을 때도 있고, 내가 한국 음식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만든 한국 음식을 만들 때 아주 좋아했다. 먹는 사람이 즐거워하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곤 했다. 김치전, 된장국, 감자전 등을 했다. 식사 자리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꼭 그 다음 장소는 벽난로 앞이었다. 거기서 허브차를 마시며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책 이야기, 뉴스 이야기, 여행 이야기 등 다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그들이 포르투갈에 여행을 다녀와 해 준 이야기들은 듣는 이를 자꾸 설레게 만들었다. 언젠가 정처 없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6일에 마젤라 Majella 가 오두막에 찾아 왔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한 후 피터와 주디를 만났다. 잠시 야기를 한 후 산책을 나섰다. 그는 저 멀리 풍경을 내다 보다가 여기가 너무 좋다며 풀숲에 주저 앉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이어갔다. 마젤라는 작년에 부모님을 여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는 꽤 불안해 보였는데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는 굉장히 안정돼 보여서 안심이 되었다. 여전히 요가를 배우고 있었다. 못 본 사이 생긴 변화는 학교를 안 나오는 대신 다른 곳에서 약초 공부를 하고 있었다. 걷다가 쐐기풀, 쐐기풀 가장 자리에 자란 솜털 같은 가시에 찔리면 붉게 부어 오른다, 을 뜯어 꼬깃꼬깃 접어 입에 넣고 씹어 먹던 그가 생각난다. 웃음이 난다. 여전히 풀을 공부하고 요가를 하며 제 2의 인생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보고싶고, 고마운 마젤라.
18일에는 리나 Lena가 오후 늦게 오두막에 왔다. 나는 저녁으로 먹을 김치 떡국과 부추전 만들었다. 피터와 주디까지 초대해 넷이서 식사를 했다. 리나는 프랑스에서 온 친구이다. 불어를 전공한 주디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농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리나는 하룻밤 같이 자고 다음 날 아침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트렐리로 향했다.
트렐리에서 온 후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 했다. 내가 없는 동안 피터와 주디 네에 미술 전공 학생들 열 두 명이 다녀갔다고 했다. 집 주변 산책을 한 후 느낀 점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한 학생은 새소리를 휴대 전화에 녹음했는데 재생을 하니깐 그 소리는 안 들리고 밖에서 나는 진짜 새소리를 듣고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24일, 아일랜드를 떠나기 하루 전, 집 아래에 있는 펍에 갔다. 온통 할아버지들이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상대방이 하는 첫 반응은 딱 하나다. "북쪽? 남쪽?" 예전에는 당황하면서 당연히 남한에서 왔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농담으로 북쪽에서 왔다곤 했다. ㅎㅎ 할배들은 베트남 전쟁도 알고, 한국 전쟁도 알았다. 집에 돌아와 마지막 저녁을 함께 먹고 우린 벽난로 앞에서 보드게임과 윷놀이를 했다.
다음 날, 피터가 코크 시티에서 더블린을 향하는 정류장에 태워다 주었다. 마지막에 포옹을 꼬옥 하였다. 이언과 헤어질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나는 울기가 싫어서 계속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더블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에게 문자를 한통 받았다. '집에 왔고 다 마시지 못한 차를 마셔야겠어. 여행 잘하고, 행운을 빌어. 벌써 네가 그리워'
두 사람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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