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23. 19:29ㆍ칠곡 너구리 일상/2019 아일랜드 외 Ireland and others in 2019
학기가 끝나고 트랠리에 다시 갔다. 이언과 아일린을 만나고 싶었다. 이번에도 아일린이 터미널에 마중나왔다.
스타이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3주 동안 농장에 머물면서 농사를 배운다고 했다.
독일에서 온 친구들. 질, 폴, 에릭. 질은 3주 과정이 끝나서 이틀 뒤에 떠났다. 폴과 에릭은 나와 같은 날 농장에 왔다.
월요일에 주어진 첫 임무였다. 묘묙장을 청소하였다. 화분에 자란 잡초들, 죽은 나무들을 정리하였다.
폴과 에릭은 다리를 근사하게 만들었다. 자꾸 썩고 부서져서 그 위에 나무를 포개는 식으로 뒀는데 두 장정이 이렇게 멋진 다리를 떡하니 만들어 놓았다. 자갈도 곱게 깔아놓고 돌로 장식한 게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당나귀 보러 가는 길에 뒤돌아 사진을 찍었다. 좁은 길을 걸으며 식물들을 만날 때, 돌아봤을 때 보이는 작은 출구, 혹은 입구가 된 작은 점을 바라보며 아무도 모르는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낯선 곳에 나를 두는 연습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요일 저녁에는 애들이 햄버거 먹고 싶대서 이언과 아일린이 요리를 했다. 두 사람의 친구들도 왔다. 일곱 명이서 밖에서 음식을 해 먹었다. 나는 야채볶음밥을 했다. 스타터로 볶음밥과 와인이라닠ㅋㅋ 감자튀김까지 직접 만들어 먹었다. 문제는 날벌레들이었는데 로즈마리를 비녀 삼아 머리에 꽂고, 파리채 삼아 이리저리 휘두르며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애들이랑 윷놀이를 했다.
수요일 아침에 칼을 만났다. 그는 바이오다이내믹 공부를 하고 있다. 3학년이다. 이언 네에서 생물다양성 조사 biodiversity survey하러 왔다. 면적 재는 걸 도와달래서 줄자를 잡고 칼이 말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칼이 이 곳에 풀 종류만 해도 6가지 넘는다고 했다. 뭐라고? 나는 그저 풀, 플란틴, 버터컵, 오치드 정도만 알겠던데... 그러면서 다른 종류의 풀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이름을 댔다. 세상에나... 정말 재밌었다. 자연에 감탄, 또 감탄. 식물 공부는 끝이 없을 것 같다.
마운틴호크 세컨더리 스쿨 Mounthawk Secondary School 에 갔다. 우리는 가든을 꾸미는데 옆에 서커스 기술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남자애한테 사진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만 갑자기 친구 손을 뿌리치고는 걷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교실에서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 이렇게 꺅꺅 거리면서 노는 모습 보니까 참 좋았다.
지난 2월에 나무를 심었던 공장 정원에 다시 왔다. 몇 주 전에 있었던 비바람 때문에 상태가 좋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새잎이 났더라. 뿌듯했다. 떠나기 전에 보고 싶다고 했더니 정류소에 가기 전에 들렀다.
뒷짐 지고 먼저 걸어가는 이언. 만날 때마다 지쳐보여서 마음이 안 좋다.
이언과 대화할 때 즐겁다. 아니, 즐겁지만은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그에게서 한 교감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쉽게 돌아가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보통은 돈과 연결돼 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쉬운 것들은 더 쉽게 돌아간다. 마음이 아팠다. 자연을, 지구를 생각하는 이언은 너무 쉽게 돈의 원리로 돌아가는 세상에 지쳐있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그의 모습이 내 미래같아서 짠하면서도 겁이 났다. 근데 그놈의 성질 때문에 아마 계속 힘들게 살 것 같다. 그는 자기더러 '아마 나는 미친 사람일 것이다'라고 했지만 내 눈엔 세상이 미쳤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고. 은행에서는 돈을 만들고, 그 돈은 종이이거나 보이지는 않는 숫자로 장식되고. 숫자의 오르내림에 많은 사람들의 기분도 오르내린다.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사라질 지구를 상상한다. 그렇게 힘이 빠질 때는 다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고집스러운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칠곡 너구리 일상 > 2019 아일랜드 외 Ireland and others in 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524_미래를 위한 금요일 Fridays for Future in Cork City (0) | 2019.09.09 |
---|---|
피터와 주디의 집에서 Peter and Judy's (0) | 2019.09.09 |
190128_창가 식물들 (0) | 2019.01.29 |